숫자와 사물을 결부시키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다.
왕가위 감독의 여러 작품을 보았지만 늘, 숫자가 등장한다. 아비정전에서는 그 유명한 1960년 4월 16일 3시 1분전. 화양연화에서는 그들이 머무르던 방의 번호 2046. 2046에서는 이름만 같은 수리가 머무는 방 번호이자 열차. 도박사로 나오는 수리첸(공리)은 오직 차우(양조위)앞에서만 검은 장갑을 벗는다. 내기를 하듯 시작된 그들의 게임에서 수리는 이기지만,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차우는 알지 못한다. 버려졌다고 믿을 뿐이다. 어제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를 봤다. 이번에는 뉴욕에서의 머무름과 거리(mile)가 숫자로 나온다. 300일 가까이 되는 시간을 떠돌던 여자와 그녀가 즐겨먹던 블루베리 파이를 매일 준비해두고 예약석임을 알리는 종이를 올려둔 제레미. 마지막으로 찾아왔던 날 가게 문을 열었다면 그때와 똑같았을 거라 말하며 스스로 떠나서야 바뀔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대화상대가 필요하다고 제레미에게 말을 걸었던 인물과는 달리 돌아온 그녀는 사뭇 달라보였다. 여유가 흐른다. 언제나 절제된 감정, 나레이션으로 흐르는 감탄사가 나올 정도의 독백, 음악, 그리고 감독이 강조하는 색(色). 현란한 장면과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그는 아픔을 담담하게, 그렇지만 날카롭게 그려낼 줄을 안다. 그래서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본 사람들은 중간이 없을 것이다. 팬이 되거나 시간이 아까웠다 말하는 안티가 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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