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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 문학과 지성사. 2006년.
여느 때처럼 전철은 만원이었다. 무채색 외투 속에 몸을 숨긴 채 일터로 출근하는 사람들 속에 납작하게 끼어 있으니 안도감과 이물감이 어색하게 교차했다. 문가에 서 있다가, 우르르 움직이는 인파를 따라 얼떨결에 충무로 역에 내렸다. 나와 같은 열차에서 내린 수많은 사람들이 계단을 향해 개미 떼처럼 일제히 진군했다. 저 높은 곳, 지상의 어딘가에 그들의 목적지가 있을 것이다. 지금 이 공간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 목적지가 있다는 것에 문뜩 소름이 돋는다. 열차 한 대가 반대편 선로로 막 진입하는 중이었다. 저 객차 안에 꽉꽉 들어찬 이들 역시 모두들 '시간에 맞추어 서둘러 가야만 하는 곳'을 가지고 있을 터였다. 그곳은 어쩌면 내가 도망쳐 나온 세상, 나를 밀쳐내버린 세상이었다.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다시 받아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영원히 이 도시의 국외자가 되어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미세먼지들이 허공을 아득하게 날아다녔다. 커다랗게 심호흡을 하고 싶은데 목구멍이 자꾸만 간지러웠다. 내 낡은 운동화는 그 자리에 멈춘 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ㅡ 간략하게 느낀 바. 진짜 김영수는, 오은수와 또다른 김영수가 살고 있는 현실로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다. 태오는, 은수가 '바라던 모습'으로 성장했지만 결국 그렇게 끝이 나버렸고. 은수는 그와 같은 일을 겪으면서, 한 단계 더 성장했고, 다시금 헤매게 됐다. 그녀의 나이, 서른두 살. 달콤한 나의 도시 서울인지, 씁쓸한 나의 도시 서울인지. 오은수의 멈추어버린 정거장은 어떤 모습일까. 내 나이 서른두 살이 되면, 나는 또 어떤 모습일까. 여전할까. 아니면, 변해있을까.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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