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나는 학교 수업이 파하면 동네 친구들과 해가 질 때까지 놀았다.
사물이 보이지 않아 노는 데 지장이 생기면, 하나 둘씩 골목 어귀에서부터 아이들 엄마가 나타나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고는 했고 지명당한 아이는 내일 또 놀자며 엄마 품에 안겼다.
그렇게 남은 아이들도 밥을 먹으러 간다며 한명씩 뿔뿔히 흩어졌다.
학원을 다니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한두 군데. 지금처럼 아이가 피곤을 느낄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다.
떼거지로 뭉쳐서 노는 아이들.
이상한 사람이 다가와도 함께 있으니 무리 중 가장 연장자가 호기롭게 아저씨는 누구냐며 따지고는 했으니
우스갯소리 하나 하자면, 범인에게 있어서 유괴나 납치도 힘들었을 것이다.
상상해보자. 떼거지로 덤비는 아이들.
비록 한 명의 힘은 미약할지라도 최소한 몇 명이 함께 소리라도 지르면 범인은 지레 겁먹고 도망칠 것이 뻔하다.
어린 기억으로도 그때는 아무리 바빠도 큰소리가 들리면 두리번거리고 참견하는 수준을 보여주는 제법 인정 넘치는 사회였다.
지금은 어떤가? 한번 훑어보고 자신의 볼 일 보기 바쁘니 돌아서고, 나서봤자 좋은 일이 아니라면 더더욱 비켜간다.
가끔 정의로운 인간은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었다가 재수없게 칼 맞고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거나 표창장을 받는 시대다.
퍽퍽한 사회의 도래. 누구의 탓도 아니다. 우리가 그만큼 먹고 살기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알게 모르게 경쟁사회로 돌입하면서 부모들은 보다 나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먹고 살기 위해, 맞벌이는 이제 필수가 되었다.
뺑뺑이 돌리듯 이리저리 늦게까지 아이를 학원에 돌리는 이유도 이제는 안다.
돈이 남아돌아서, 아이의 성적 때문에, 혹은 모두들 보내잖아요! 하는 그런 이유가 아니라,
맞벌이 때문에 학교수업이 끝나고 혼자서 집에 있어야 하는 아이가 염려스러워서라는 걸.
그나마 학원에 보내면 대화라도 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그것.
성적이나 다른 애들에 비해 내 아이가 도태되는 것 따윈 그 다음 문제라는 것도.
문제는 바로 이쯤에서 발생한다.
학원을 보낸다 하더라도 시간의 차, 바로 틈이 발생한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부모가 보내는 학원은 각기 다른다는 점, 홀로 다닐 수밖에 없다.
아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더 데리고 가기가 쉽고, 반항을 한다 해도 별 수 없다.
추적 60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아이를 유인하는 시간을 실험하였는데,
한 아이는 차에 타기까지 고작 23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믿어지는가? 당신의 자식이 아무리 뛰어나고 똑똑해도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유혹적인 미끼 하나를 던져주면 GAME OVER.
자발적으로 이 실험에 참여한 부모들, 특히 엄마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실험이었으니 그 정도였지 실제로 벌어진 일이었다면…… 가슴을 쓸어내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간혹 의심이 들지만 우리나라는 치안에 제법 높은 순위를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다.
세계 10위권 안에 드니 이쯤에서 한번 비웃어줘도 좋다.
물론 경찰도 손 놓고 노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바쁘다. 때론 잠도 못 잔다.
월급은 쥐꼬리, 생명의 위험은 언제나, 그야말로 캐 고생.
때론 범인의 말 한 마디에 놀아나고, 국민과 언론의 따가운 일침을 들으면서,
그들은 쌍욕을 뱉고 있을지 모른다. 열심히 일해도 듣는 소리가 그런 것들이 전부라면 욕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컵라면조차 먹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누가 그들을 욕할 것인가.
선진국과 비교해 이건 이렇게 한다더라! 하는 등의 비교는 이제 그만할 때도 됐다.
본 받아서 행하자. 이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
언론이 부르짖는 선진국의 그들또한 해결하지 못한 사건들이 많다. 그러니 비교는 말자.
딱 하나 아쉬운 점은, 수사초기 단계에서부터 끈질기게 파고드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했다면 사건의 절반은 막을 수 있을지도 몰랐을 것이라는 절박함.
어느 나라든 어느 시대든 역시나 사이코들이 있기 마련이고, 또라이들이 있기 마련이고, 변태들이 있으니 말이다.
동기없는 살인은 없단다.
육하원칙에 의거해 누가, 무엇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라고 따져 물어도 범죄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이제는 정말 어느 장소도 안전하지 않다.
믿을 위인도 없다. 범인은 당신의 가까운 곳에 상주해 언제 당신을 노릴지 모른다.
분석 결과 면식범이 가장 높고, 그 범인은 못 잡아도 1km 이내에 있다고 한다.
안전지대는 없다.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만 하는 삭막한 이 시대.
당신은 안전하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당신의 가족은? 당신의 지인은?
상상만으로도 정말 무섭고 소름이 끼친다.
이름을 거론하기에도 안타까운 소중한 생명이 꽃도 피어보기 전에 억울하게 사그라들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것과, 계속 일어날, 누군가의 죽음도, 당연시 되는 상황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훗날 이런 사건이 너무 많이 일어나 나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의 무덤덤한 모습도 보기가 싫은 이유는,
적응하면 할수록 더더욱 많은 범죄가, 더욱 많은 희생자가 나타날 것만 같은 불안감의 발로다.
적어도 나는, 아직은 살 만하다는, 그런 믿음이 조금이나마 있다.
흥분해서 손이 조금 떨리는 상태에서 쓴 글.
논리 없고 두서가 없을 지라도 이해를 바라며,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접는다.